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다안의 침입 (문단 편집) === 이무의 무쌍과 전쟁의 종결 === 이때 카다안의 기병 3,000여 명이 추가로 철령을 넘어 교주에 주둔하였고, 이 중에 1,000여 명은 [[강원도]] [[철원]] 부근까지 진군했으나 연기 전투 등의 패배 소식을 듣고 말머리를 돌려 퇴각했다. 고려군은 잔당 괴멸에 나서, 6월 1일 김흔을 죽전(竹田)으로, 한희유를 충청도로, 나유를 교주도로 보냈다. 적병 530여명 등은 한희유에게 항복해오기도 했다. 그런데 카다안의 아들인 라오데이는 이미 죽전을 넘어 서경으로 진군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자 당시 배에 타고 있던 나유는 육지에 상륙해서 라오데이와 싸우려고 하였다. 이에 현문혁(玄文奕)은 >"지휘를 보니 매복을 당할지도 모른다." 며 만류했지만 나유는 이를 듣지 않았는데, 고려군이 전열을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라오데이의 군대가 급습을 해왔다. 나유는 군대를 후퇴시켜 간신히 배에 올랐지만 낭장(郞將) 이무(李茂) 등 수십 명은 미처 배에 올라타지 못했다. 그러자 현문혁은 >'''"이무야! 네가 지금 위급하다고 적에게 항복한다면 처자식은 죽겠지만 적과 싸우다 죽는다면 나라에서 상을 내려 줄 것이다!"''' 라고 소리쳤다. 가족 생각이 났는지 이무 등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라오데이군에게 항복하지 않고, 근처의 산으로 달아났는데, 적군은 산을 포위하여 사방에서 화살을 쏘아대었다. 이무는 나무에 딱 붙어 화살을 피하며 저녁까지 버티다 주머니 속의 말린 식량을 나눠 먹으며 >'''"사내라면 사지에 몸을 던져 살 길을 찾아야 하는 법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소리치며 남은 군사들의 사기를 달랬다. 이후 활 시위를 당겨 쏘아 '''적장의 목을 꿰뚫어 죽이고''' 혼란에 빠진 라오데이군에게 '''결사적으로 달려들어 육탄전을 벌였다.''' 그리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싸움을 마지막으로 카다안군과의 혈전도 드디어 막을 내렸다. [[분류:고려(원간섭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